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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애

W. 박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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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룡은 오늘 드디어 결심했다. 매일 창가 옆 맨 뒷자리에 혼자 있는 각별이라는 애한테 말을 걸자고. 사실 걔한테는 말을 걸기 싫었다. 반에서 겉도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어떻게 되는지 따위는 질리도록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망할 오지랖이 항상 이성을 이기고 멋대로 말을 붙였다. 항상 그랬다. 친하게 지내면 학교생활이 편해질 것 같은 애보다는, 친하게 지내면 인간관계가 망해버릴 것 같은 애와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 애랑은 결국 친해질 수 없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반에서 겉도는 애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를 가장 잘 아는 게 자기 자신이면서도 공룡은 기어코 각별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공룡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한 발짝 두 발짝 각별에게 다가갔다.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그 애가 드디어 뒤를 돌아보았다. 입에 은은히 띠던 미소는 어디 갔는지 와락 인상을 구기며 공룡을 노려봤다.

    

"무슨 일이야?"

    

그 시점부터 공룡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제까지 제가 다가간 사람 중에서는 공룡을 없는 사람처럼 무시할지언정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뭐야 얘? 그런 불친절한 답변이 오히려 공룡의 자존심에 불을 붙였다. 그 재수 없는 낯짝에서 본 은은한 미소를 다시 피우고 싶었다.

    

"그냥. 네 이름이…. 각별? 김각별 맞지?"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말했다.

    

"맞는데, 나한테 뭐 볼일 있니? 없으면 저리 가줄래?"

    

"으응, 볼일 있어. 너한테."

    

"뭔데."

    

"너 내일부터 나랑 같이 밥 먹을래?"

 

 

 

 

 

 

 

 

 

 

 

 

 

 

 

 

 

 

 

 

 

 

 

 

 

 

 

 

 

 

 

 

 

 

 

 

 

 

 

 

    

각별은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걸 본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공룡은 내심 상처를 입었다. 아무래도 첫인상이 망해버린 것 같다. 각별이 거절의 대답을 돌리기 전에 공룡이 황급히 덧붙였다.

    

"그, 그니까, 선생님이! 선생님이 네가 반에서 겉도는 것 같다고 하셔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셨거든!"

    

망했다! 공룡 자신이 봐도 형편없는 연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년에 연극부라도 들어볼걸. 이런 말로는 그 어떤 바보라도 안 속겠지.

    

"알겠어. 대신 점심시간 빼고는 아는 척하지 말자."

    

그 바보가 여기 계셨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그렇지만 다행히도 공룡은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상관없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공룡은 이 얼토당토않은 상황을 오히려 반겼다.

    

"정공룡! 빨리 와, 축구하자!"

    

"좀만 기다려. 지금 갈게!"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린 공룡은 각별에게 손을 건넸다. 각별은 공룡의 손을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악수하자고, 악수! 빨리!"

    

조심스레 맞잡은 손을 공룡이 세게 흔들었다. 잘 부탁해!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난 공룡의 뒷모습을 보면서 각별은 똥을 씹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뭐야, 쟨?

    

---

    

그다음 날부터 공룡과 각별은 정말로 같이 밥을 먹었다. 공룡의 친구들이 같이 먹자고 사정사정을 해도 공룡은 거절했다. 그가 없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밥을 먹을 각별이 무척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주를 같이 보내며 공룡이 느낀 것이 있었다. 얜 생각보다 편식이 심하다. 그리고 밥을 엄청 느리게 먹고, 멍을 엄청나게 때린다. 또 의외로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웃는다. 각별이 싫지 않을 때가 있다면 오직 웃을 때뿐일 거다. 평소에도 좀 많이 웃으라고 하면 금세 정색을 하고 내가 언제 웃었냐? 따위의 말을 한다. 그게 엄청 웃겼다. 그리고 각별은 생각보다 훨씬 좋은 애였다. 같이 있으면 항상 재밌진 않지만, 항상 편안했다.

    

어느새 그 둘은 점심시간뿐만 아니라 등하교할 때도, 쉬는 시간에도, 주말에도 매일같이 함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누군가 물었다. 너희 언제 이렇게 친해졌냐? 몰랐네. 그럼 둘은 항상 동시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친구 아닌데. 맨날 싸워." 그럼 누군가는 깔깔 웃으며 친구 맞네! 라고 하다가 간다. 그런 상황도, 그런 대답도 이젠 일상이 되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담임 선생님이 공룡을 교무실로 불렀다. 김각별, 나 금방 올 테니까 매점에서 초코우유 좀 사다 줘! 그런 말을 하면서 교무실로 갔다.

    

"공룡아."

    

"네?"

    

"선생님이 이런 말 하니까 좀 뭐한데, 2번 김각별 있지? 걔랑은 놀지 마라."

    

"무슨 말이세요? 선생님 지금 학교폭력 조장…."

    

"진정 좀 해봐. 다 뜻이 있어. 각별이가 요즘 동네에서 노는 애라는 소문이 있더구나. 선생님은 걱정돼서 하는 말인 거 알지?"

    

"그게 말이 되는,"

    

"선생님 말씀 잘 알겠지? 공룡이는 착한 학생이니까 잘 들었을 거라고 믿어."

    

".. 네. 알겠어요. 저 그럼 이만 가봐도 될까요? 다음 수업 준비해야 해서요."

    

"그래, 가 봐라."

    

.

    

    

뭐야?

    

진짜 뭐지?

    

아니, 애초에 선생이 저래도 되는 거야? 아까 그 말은 진짜인가? 걔가 성격은 나빠도 그럴 애는 아닌데. 물론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정도는 안다고. 근데 내가 '진짜' 걔를 알고 있나? 그냥 나 혼자만 착각한 건 아닌가? 그래. 항상 내가 먼저 말 걸고, 같이 가자고 하고, 이거 먹자고 하면 걘 항상 불만 없이 따라줬다. 한 번도 걔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애초에 난 걔 친구이긴 했던 건가? 사실 처음부터 이 관계의 주도권은 각별의 손아귀에 있었다. 각별이 조금이라도 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갈라지는 관계. 공룡에게는 꽤 이질적인 관계였다. 각별이 들었다면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말라고 하며 공룡을 금방 감정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어 주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공룡에겐 각별이 없었다. 공룡은 그대로 울었다. 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만히 두었다. 눈가를 닦을 힘이 없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할 힘이 그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

    

    

얘가 왜 이렇게 안 오지? 설마 혼나고 있나? 금방 온다고 했는데. 초코우유 사둔 건 어떡하지? 찾으러 가야 하나? 오지랖인가?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각별은 그렇게도 나가기 싫어하던 자신의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갈수록 빨라지는 걸음을 애써 외면한 채 공룡을 찾고 있었다. 그때 울고 있던 공룡을 보았다. 공룡이 우는 모습은 각별은 물론 공룡의 친구들까지도 본 적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각별은 절대로 모를 게 뻔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공룡에게 각별은, 적어도 지금은 마주치기 싫은 얼굴이었을 것이다. 친구에게 확신이 없는 이는 상대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야."

    

".......아, 왔어?

    

그런 공룡의 말에선 헛치기가 나왔다. 분명 당황한 것이 틀림없었다. 애써 운 것을 감추려는지 눈가를 박박 닦는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웠다.

    

"왜 울고 있어. 혼났냐?"

    

"나 괜찮아. 진짜.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나서."

    

"거짓말."

    

"진짜라고."

    

"그런 걸 믿는 바보가 어딨냐?"

    

"넌 전적이 있잖아. 바보야."

    

실없는 농담이 지나가자 방금까지 뚝뚝 흘리던 눈물은 어디 갔는지 공룡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었다. 다행히 아까보다는 긴장이 풀렸는지 한층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넌,"

    

"난?"

    

"넌 뭐야?"

    

"....나? 난 네 친구지."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풀렸다.

    

"진짜? 우리 친구 맞아? 너 나랑 친구 하고 싶었어?"

    

"나한테 계속 바보라고 하더니, 네가 제일 바보였네. 우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구였어."

    

사실 공룡은 항상 불안했었을지도 모른다. 공룡의 울타리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항상 어디론 가로 떠나버렸다. 공룡도 그걸 딱히 붙잡지 않았다.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명할 수 있는가? 공룡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공룡은 친구라고 부를만한 이가 없었다. 각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각별은 울타리 안에 더 이상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그런 각별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은 공룡이 처음이었다. 또한, 공룡의 울타리에서 나가지 않은 사람 역시 각별이 처음이었다. 서로의 첫 번째 친구가 된 느낌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무척이나 편안하고 좋았다. 공룡은 마침내 자신에게 확신을 불어넣어 준 친구에게 감사했다.

    

"고마워."

    

"고마우면 일주일 전에 빌려 간 만 원이나 돌려줘."

    

그러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를 마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들이 진짜 친구가 된 순간이었다.

    

    

    

    

    

+

    

 

 

"근데 너 있잖아, 옛날에 노는 애였어?"

    

"어렸을 때 좀. 동네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지."

    

"다시금 느끼는 건데 너, 개그에는 진짜 소질 없구나."

    

"눈치껏 웃어주는 게 친구야."

    

"하하. 진짜 웃기다 너. 개그맨 해도 될 것 같아."

    

"억지웃음 짓지 마."

    

"어쩌라는 건데."

    

실없는 농담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각별은 예상대로 "노는 애"가 아니었다. 한순간이나마 그걸 믿었다는 사실이 공룡은 부끄러웠다.

    

마침내 공룡은 결심했다. 내일 그 선생님에게 가서 따지기로. 내 가장 소중한 친구는, 절대로 그런 이상한 애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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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귤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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