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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낯설었다. 처음 마주하는 얼굴들, 시선들, 그 속에 담긴 무관심이 김각별은 더없이 마음에 들었다.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궁금증과, 덤처럼 딸려나오는 맹맹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과연 평범한 새 학교 다웠으므로 그는 안심한다.

 제 자리에 몰려들어 과거를 파헤치지 않는 것, 불필요한 거주지와 지난 흔적에 대한 안부에는 무엇도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지. 그리 생각하면서, 새것답지 않게 때탄 책상만 눈이 빠져라 응시할 그 때에 각별은 등에 와닿는 불길한 부름에 흠칫 고개를 들어올린다.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해왔던 표정의 심드렁함, 적당히 재미없는 말투, 누구라도 다시 말붙이고 싶지 않을 만큼의 무기들 온몸으로 장착하고서야 제 눈앞에 인물을 바라본다. 그 애는 웃고 있었다.

 "안녕, 난 정공룡이야."

 "안녕."

  끝이었다. 숨막힐 정도로 꽉 조인 넥타이에 끝까지 잠군 뺏뺏한 와이셔츠. 잔머리 하나없이 차분한 반 곱슬이나 샌드위치 마냥 차려입은 교복 조끼. 티 하나 없는 웃음소리.

 어쩌면 순간 다행이다, 하며 안도한 까닭은 정공룡이란 그 애의 따분한 첫인상 덕분이었다.

 "이름이 김각별 이라고 했지? 별처럼 생겼다 했는데 진짜 별이더라."

 "....별처럼 생겼다고?" 

 "그래. 별똥별."

 멍하니 정공룡의 말 되짚던 각별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별똥별, 남의 소원 주구장창 이루고는 추락하는 그것 말이지. 

 어쩌면 일리있는 말이었다. 추락은 한순간이고 소원중에 제 것은 없다. 어쩌면 항상 그랬다. 

 한편, 제 심각해진 낮빛에 어리둥절한 정공룡은 그저 또 고개를 기울이다가, 웃다가, 책상 귀둥이만 응시하는 각별의 시선 박수로 모아들인다. 짝, 하고. 각별이 또 놀란다.

 "좋은뜻이었어. 너랑 친해지고 싶었거든."

 "전학생이 그렇게 신기해?"

 "아니. 전학생이 아니라.."

 네가 신기해. 가까이에 관찰하지 이상 알아차릴 수도 없을 싸늘함, 더불어 동질감만 입에 내걸었다. 

 정공룡은 각별이 마음에 들었다. 무관심에 태연한 저 묘한 동지애를 불러 일으킨다. 차마 동정도 아니고, 공감도 아니고. 

 아픈 이들에게만 보이는 상처란 생각보다 강렬하고 또렷해서, 그는 각별을 처음본 그 순간 별똥별 난무한 밤하늘 내던져진 마음으로 전율해야 했다.

 순식간에 달아나고 있었다. 쫓아 소원따위 빌 시간조차 없이. 떨어지며 땅에 처박혀가고 있었다. 자신과 같았다. 한때 빛나던 것이, 흙바닥 뒹굴 준비만을 앞두고 잔뜩 지쳐만 있었다. 한번에 알아보았다.

 "맞다! 우리 학교 소개시켜줄게. 매점도 있고, 작지만 독서실도 있거든."

 "아니 난 됐고... 그것보다 애들이 너 부르는데. 그냥 가봐."

 "저 애들한테는 흥미 없어. 지금 나랑 말하고 있는건 너야."

 기가 막혀, 각별은 표정을 감싸는 것 조차 잊고 눈살을 찌푸린다. 방금 처음으로 인사나 주고받은 주제에. 내게 흥미라니, 관심이라니. 돌연 숨이 턱턱 막혀왔다.

 혹, 제 과거 행적을 아는 아이였다면, 당장 발 아래 엎드려 침묵을 빌어도 모자랄 틈에, 그를 밀쳐내도 괜찮은가. 정말로 순수한 관심에서 비롯된 호의인가. 장담할 수 있는건 무엇도 없었다.

 "그래서. 나랑 학교 둘러볼거지?" 

 거절의 말, 부정의 말. 확실한 적의와 혐오 드러내야 한다. 고개 저으며 당장이라도 피곤에 쓰러질듯 굴어야 한다. 

 눈앞의 의심스런 호의는 거절하자고, 수많은 전학과 방황 가운데서 그리했던 것 처럼. 처음 본 아이 제안 하나 거절하는 일이 무어 그리 어렵겠냐면서도. 

"....좋아." 

 내민 손에 의심조차 못두르며 맞잡는다. 비난할 수도 없는 웃음이라, 웃음이라.

 그리하여 결국 싱글벙글 수상한 웃음 핀 아이 손만 덥썩 내잡는 이유라면, 아픈 이들에게만 보이는 상처, 유난히 돋보인 까닭이렷다. 

 

생각보다 괜찮은 애였어. 지나치게 밝아 부담스러웠던 부분만 조금 제외한다면 정공룡과의 학교 탐방 그다지 나쁜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그 애는 친절했고, 많이 웃었고, 공부조차 잘하는지 이것저것 모르는 것이 없어, 각별은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도중에도 정공룡의 도움을 수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럴 때마다 정공룡은 기쁜듯 저를 반겼고. 문제집에 열중한 듯 보여 모르는 것 물어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작게 망설이는 저를 어떻게 알아 보았는지, 그는 또 쪼르르 다가와 틀린 부분을 짚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따분하고 성가신 그의 첫인상은 각별의 안에서 꽤나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며 바뀌어가고 있었다.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 간지러운 생각 되풀이하고 주먹만 꾸욱 전 각별의 얼굴이 드물게 생기 띄었다.

 그러나 각별이 하나 간과하지 못한 것. 그에게 처음 마음을 열어 손 맞잡은 이유. 상처, 그것 있는 이들 에게만 본능처럼 느끼는 기묘한 동질감.

 단순히 웃고있다 하여 그가 치료됨 아님과 같이, 어쩌면 내내 웃고있던 그 애 한번도 웃은적 없겠구나 생각하고 마는 것은 골목길 오토바이 하나 팔에 걸친 정공룡을 발견한 후였다.

 그는 또 저를 보고 웃는다.

 "너 여기서 뭐해?"

 "그건 왜 궁금한데?" 

 싱글벙글 웃는 낮 속에, 학교에서는 보지못한 찝찝함이 담겨 있었다. 명백한 경고였고, 못본 척 지나가라며, 사교성 좋은 특유 분위기 내뿜는다. 

 그러나 이미 자리 지나치며 고개 돌렸어야 할 각별은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판판하던 미간 조금 일그러뜨리며 정공룡이 위치한 골목 쪽으로 걸음만 더 옮겼다. 

 그가 잡고 있는 오토바이의 문양과 똑같은 헬멧을 든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무언가 찾고 있는 모습을 멀지 않은 곳에서 보았다.

 "그 오토바이 꼭 네것처럼 잡고있네."

 "아아, 옮기는 알바중이야."

 "그래? 요즘은 주인도 모르는 오토바이 알바가 있구나."

 안면 근육 안쓰러울 정도로 내내 웃던 애 안색하나 뒤집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본 적 없는 딱딱한 얼굴 죽일듯 저 노려보는 눈동자가,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보일 정도로 뻔뻔한 분노. 

 그 애가 화를 내고 있었다. 각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야, 뒤바뀐 표정과 성격 하나에 호들갑 떨기엔 정공룡에 대해 아는 것이라 없었으므로. 원래는 이렇구나, 잘도 죽이고 사는구나 싶었다. 

 남들이 짐작도 못할 뭔가를 가진 쪽은 각별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원래 알리고 싶지 않은 치부 하나쯤은 얹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하며. 그럼에도 도둑질은 나쁜 것이라, 화난 정공룡 앞에 당당히 맞섰다. 

 "야. 닥치고 갈길 가." 

 "네가 주인한테 그 오토바이 돌려주는거 보고. 알바라며?"

 "웃기고있네. 당연히 훔친거지. 너 미쳤냐?"

 경멸하는 말투에 뚝뚝 흘러나오는 짜증이 조금 불쾌했다. 떳떳하지 못한 일 하고있는 것은 자기 쪽이면서, 욕이란 욕은 죄다 각별이 먹는 것 같았다. 

 애초에 예쁜 말로 싸가지 상대할 생각한 자기 탓이라고 각별이 한숨 내쉰다. 그것이 정공룡을 불편하게 했다. 

 이제 보통의 아이라면 곧장 뒤돌아 꼬리를 내릴 타이밍이었고, 덩치부터 분위기까지 무엇 하나 안전한 없어 보이는 정공룡 앞에, 병자같은 안색 띈 각별은 조금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는 또 몇발자국, 그 애 향해 걸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이.

 "미친건 대낮에 도둑질하는 너고."

 "꺼지라는 말 안들려?"

 "욕 그만해."

 "싫은데? 욕이 듣기 싫으면 네가 먼저...!" 

 뒷말은 약간의 비명섞인 신음과 함께 묻혔다. 차분한 갈색 반곱슬 한뭉텅이가 각별의 손아귀에 있었다. 

 여전히 평온하고, 또 질린다는 얼굴로 정공룡 머리 한웅큼 움켜진 각별이 시퍼런 눈을뜨고 제 손에 잡힌 머리채만 흔들었다. 그만하라니까.

줄곧 짜증과 분노만 담던 공룡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 차올랐다. 약간의 수치심도 없지 않았다. 

 "이거 진짜 미친놈 아니야!" 

 "욕." 

 머리카락 뭉텅이 쥔 손에 힘을 꽉 준 각별이 짧게 외치자 그 손 떼어내려 씩씩거리던 공룡의 양 팔이 경로를 바꾸어 각별의 긴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맞짱이다. 하는 생각으로 제 짧은 머리카락 보다 훨씬 잡기 쉬울 검은 포니테일에 손 뻗은 그 순간. 각별이 사라진다. 제 머리를 잡은 손만 존재 하는 채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나타난다.

 "이새끼가.. 피해?"

 "욕 좀… 됐다. 오토바이 주인한테 돌려주면 놔줄게."

 "너같으면 돌려주겠냐고!"

 머리 잡혀 숙여진 자세 그대로 자존심만은 꿋꿋하게 지키던 정공룡이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각별의 머리카락과 사투를 벌이며 소리쳤다.

 애는 대체 뭘 하는 애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이 아 니라 모든 부분에 닿을 수 조차 없다. 운동이라도 배운 마냥 이리저리 몸 비들며 제 손짓 피해내는 것이, 꼭 저만 버둥거리며 애쓰는 꼴을 연출해내어 더 열이 뻗쳤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면서. 물론 도둑질 행위 자체가 정당성 있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이렇게 해야했다.

 그래야 그 차가운 부모가 저 대신 잘못을 빌거나 저를 야단치며 혼쫄을 낼 것이다. 그러면, 그러면 적어도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아들로서 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야만. 내가. 

 "거기 너희들 지금 내 오토바이 가지고 뭐하는거야!?"

 "헉..." 

 각별이 헛숨을 들이켰다. 멀지 않은 곳에서 보았던 오토바이 주인이 성을내며 당장이라도 경찰을 불러 낼 기세로 저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면 정공룡의 뜻대로, 소원처럼. 

 그러나 유난히 창백한 것은 각별의 안색이다. 각별은 경찰서 따위에 붙들려서는 안되었다.

 세상은 유독 추락한 자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오래 지나지 않은 때에 흙먼지 뒤집어 쓴 각별의 일탈과 같은 소식은, 곧 세상이 또다시 제게 관심을 가지리라는 것을 암시했다. 그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각별은 정공룡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빼낸다. 그 대신 공룡의 넓은 후드자락만 꽈악 움켜쥐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새하얀 손가락 몇개에 정공룡의 시선 머물렀고, 또 조소한다.

 "뭐야 너 무서워?"

 "얼른 뛰어가서 말씀드려. 네가 훔쳤고, 죄송하다고 해." 

 "그래봤자 경찰 부를거 뻔한데 굳이 뛰어가기까지 해야하나. 그냥 나랑 같이 파출소 가자, 재밌겠네. 나는 도둑질로, 너는 폭행죄로. 아니면 나랑 공범이 될 수도 있고.",

 "공범?" 

 가뜩이나 제정신 아닌 듯 일그러진 눈매에 시름이 더했다. 정말로, 이 방법만은 쓰기 싫었는데. 정공룡 후드자락 꽉 진 각별의 손이 무언가 다짐한 듯 떨림을 멈추었다. 

그 모습 흥미롭게 관찰하던 정공룡의 몸이 획, 하고 강제적 뜀박질 시작하고 만 것은 그로부터 3초가 지난 후였다. 각별은 공룡과 함께 도망치기를 택했다. 

 인생에 수도없이 해온 익숙한 짓 따위를, 고작 오토바이 하나에, 하지도 않은 짓의 후완 두려워 찜박질 시작한다. 

 멈춘것은 지친 정공룡이 아스팔트 도로에 그대로 쓸려 넘어졌을 때였다. 그제야 꽤 멀리 도망쳤음을 인지한 각별이 숨을 돌렸다. 

 "와, 진짜...미친놈....미쳤다.." 

 "욕하지 말라고 했잖아."

 "지금 네가 한 짓을 보고도 그런말이 나와?" 

 험한 말과는 다르게 경악스런 웃음 터뜨리며 호흡 고르던 정공룡이 한적한 밤 도로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에 비하여 심한 뜀박질에도 호흡 몇번 흐트러지지 않은 각별은 그대로 깔끔한 모양새였다.

 각별의 시선은 정공룡의 왼쪽 무릎을 향해 있었다. 넘어질 때에 생긴 그 상처에서는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또 각별은 초조해진다.

 "무릎이....." 

 "지금 내 무릎이 문제야?" 

 "다쳤잖아. 밴드랑 약 사올게, 잠깐 저기 앉아서 기다려."

 "병주고 약주네. 필요 없으니까 이제 정말 갈길 가."

 뜻뜻 혀 차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흐르는 제 무릎 한번 힐끔 바라본 정공룡이 가늘게 뜬 눈으로 유난히 더 창백해진 각별에게 시선 두었다.

 안색은 병자마냥 창백한 것이, 허약한가 싶었는데. 그 오랜 뜀박질에도 숨 하나 까딱 안하는 것을 보아하니 더욱 수상했다. 그럴수도 있지, 하며 넘기기엔 제 머리카락 붙들고 보여주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안돼." 

 "뭐?"

 "피나잖아. 그거 그냥 두면 안돼."

 이번에는 차마 짜증스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각별은 처음보는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제 무릎 타고 흐르는 얇디 얇은 상처 방울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강박처럼 무언가 입 달싹였다. 

 그냥 두면 안돼. 그냥 두면 안돼. 분명히 덧날거야. 

 남의 상처에 무어 그리 관심이 많으냐고, 뜀박질에 의한 죄책감 때문이라면 걱정일랑 술술 털어버리고 그냥 가버리라고. 목구멍 안쪽까지 차오른 말을 입 안에 굴린 순간 공룡은 그것을 도로 삼켜낸다. 각별이 웃고 있었다. 

 자신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그래서, 어쩌면 이미 죽은 숨으로 꾸역꾸역 웃었다. 그리고는.

  "다친건, 바로 치료해야 해." 

 각별은 침묵한 정공룡을 끝끝내 근처 의자에 앉혀둔 후에야 특유의 빠른 뜀박질로 흰 봉투에 반창고며 소독약 따위를 가득 담아 나타났다. 

 약국에 장이라도 보러 다녀온 거냐며, 빈정거리는 그 얄미운 속삭임 죄다 들리지도 않는 듯 무시하고서는 다 식은 무릎 상처만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 후에 수그려 앉은 각별이 직접 손 뻗어 제 상처에 약 바르려 드는 것을, 정공룡은 간신히 말릴 수 있었고. 원수지간이나 다름 없는 사이 되어놓고선 무릎 상처에 약이라도 바르겠단 약속 몇번이고 듣고서야 뒤돌아 떠난 각별의 뒤통수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진짜 이상한 놈이네. 저 자신 되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내린 각별에 대한 평가는 그랬다. 

 이상한 놈, 수상한 애. 그날도 사람 없는 집구석 틀어박힌 정공룡의 손에는 흰 봉투 하나가 연신 달랑거렸다.

 정공룡은 책상 옆 쓰레기통 구석에 하얀 약봉지를 밀쳐넣었다. 부스럭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난 비닐봉투 바라보는 눈이 유난히 심란했다. 

 따끔한 무릎에 다 굳어버린 피가 그대로 맺혀있다. 약을 발 라가며 치료하고픈 상처는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붙인다. 

 갑작스런 달리기와 꽤 마음에 들었던 전학생과의 갈등. 무엇하나 피곤치 않은 일이 없었음에도 연신 몸을 뒤척이며 베개를 끌어안는 와중에 잠만은 오지 않는다.

 결국 공룡은 끄응, 신음하며 부스스 일어나 책상앞에 다가가 앉았다. 달칵이며 켜지는 노트북으로 무언가 알아볼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 또한 각별과 관련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묘하게 익숙해.." 

 그 얼굴이, 병자마냥 생기하나 없던 얼굴이 익숙했다. 툭 치면 주저앉게 나약한 표정하며 암울한 분위기는 공룡이 저를 포함해 두번째로 마주하는 체념의 표정이었다. 

호기심과 기이함이 동시에 피어오르자, 정공룡은 고개를 기울인다. 어디서 봤더라. 고민만 한창이다. 

 

 그렇게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를 탐색하던 정공룡이 각별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을 관두려는 찰나, 익숙한 이름을 담은 기사 제목이 그의 눈에 들었다.

 김각별. 전학생에 대한 내용이었다. 정공룡은 흐릿한 눈으로 뿜어내던 졸음을 몰아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펜싱 유망주 김각별, 연속적 패배 후 은퇴선언.]

 자극적이었다. 기사는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정말로 김각별, 그 유망주의 은퇴 사유가 연속적 패배 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발목 부상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는 달랑 한줄밖에 나와있지 않은 엉터리 기사였다.

 정공룡은 홀린듯 인상을 찌푸리며 스크롤을 내려 기사를 정독했다. 중간중간 나와있는 사진에는 조금 어린얼굴의 각별이 번쩍번쩍한 메달을 걸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당당함, 자신감, 기쁨, 활력과 생기 그런것들 가득한 각별의 미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름이 나와있지 않았더라면 차마 같은 인물인 줄은 짐작도 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사진속 펜싱복장을 한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렇다면 달랑 한줄로 적인, 경기 도중 입었던 발목부상으로... 라는 부분은 무엇인가. 정공룡이 보았을 때, 잠시 잠깐 마주한 그 아이 감히 짐작해보자면 김각별이 패배를 두려워 했을리 없다. 그럴 수 없었다. 

 애초에 행복과 즐거움으로 원동력 얻던 인간이 고작 패배에 주춤할 리 없었다. 결국은 부상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엉터리 기사속에는 각별이 부상을 입고, 즉 연속적으로 패배한 경기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즉시 정공룡은 그것을 검색하여 경기 영상을 확인한다. 그리고 또 감탄한다. 구질구질한 화질 속 각별은 날고있었다. 정확히는 그에 비제한 속도로 움직이며 경기를 해내갔다. 부상을 입기 전, 개인전에서의 경기인 듯 싶었다.

 곧 각별은 개인전을 모두 이기고선 자리로 돌아왔다. 해설진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발목을 움켜 쥐는 각별의 모습이 크게 확대되었다. 

 -각별선수, 발목을 다친 모양인데요....

 -부상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만, 남은 단체전은 어떻게...   정공룡은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리를 절었다. 설마, 저러고서 또 경기를 뛰었다고? 친하지도 않은 남의 아픔에 새삼스레 경악한다. 

 각별은 경기를 뛰었다. 상처를 즉시 치료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원한 경기를 뛴 것일까? 발목이 통통 부어 걷기도 쉽지 않은 상태로, 에이스란 이유에서 엉터리 실력의 팀원들을 등에 지고 홀로 단체전을 치르다시피 했다. 

 그건 각별이 원한 펜싱이었나? 공룡은 짐작한다. 확신한다. 아니었을 것이다. 많이 아팠을 것이다.

각별은 실력있는 선수였고, 자신의 몸이 어떤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그런 상태에서 은퇴를 선언할 정도의 부상을 방치해가며 경기를 뛴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테지. 

 코치, 혹은 같은 팀원들의 부탁이나 협박 정도였을 것이다. 영상만 자세히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지친 상태에 부상까지 입은 각별의 등을 떠미는 코치와 짜증섞인 팀원들의 탄식소리만 봐도 뻔했다. 그것들 다 짊어지고, 결국은 그 어린애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저렇게 웃던 애가. 각별이.

 결국 영상속 각별은 기사의 내용처럼 잔뜩 패배한 몰골로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카메라가 돌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코치의 표정에 정공룡은 저가 다 소름이 돋는 듯 싶었다. 

 각별은 절뚝거리며 어딘가에 주저앉았고. 이내 머리에 쓴 것을 벗자 드러난 것은 땀도 아닌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이었다. 각별은 경기 내내 울고있었다. 

 발목에서 울리는 경악스런 고통, 그런 와중에도 이어지는 경기, 등 뒤에 쌓이는 압박, 무력함, 어쩌면 치료 하기 늦었다는 초조함 등이 쌓인 표정이었다. 

 살아있음 알리는 표정으로 웃던 김각별, 그 애의 눈물은 한동안 이어졌다. 해설진들은 그가 패배의 아픔으로 울었던 것이라 추측했지만 아니었다. 

 각별은 많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울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알았을 테지. 압박에 등 떠밀려 강제경기를 치른 그 순간 제 발목은 더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며, 다시는 뛰지못하리라는 것을. 각별은 그자리에서 확신하여 울었다.

영상은 끝이났고 정공룡은 탄식한다. 고등학생한테 무슨 이런 서사가 다있어. 그때서야 뇌리를 스치 는 각별의 말이 한가득이었다. '다친건, 바로 치료해야 해.' 

 각별은 그 말을 무슨 심정으로 뱉은걸까. 무슨 심정으로 제  무릎 상처 응시했을까. 이제는 고작 학생 하나일 뿐인 그가, 유달리 울것같은 얼굴로 약봉지 들이밀었을 때, 자신은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 

 영상에 댓글은 몇개 없었다. 원체 진실에는 관심없는 사람들 다웠다. 각별에 대해 다룬 여러 스포츠 기사들은 온통 그의 패배에 집중하였으며, 그 어린 아이 하나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의 댓글은 자극적 기사에 가득했다. 

 끈기가 없다. 인내심이 없고 너무 나약하다. 실력이 없고 초심을 잃었다. 연습을 게을리 해서 그렇다.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 투성이였다. 알지도 못하면서.

 끈기와 인내와 실력과 초심과 성실함 모두 갖춘 그가, 돌연 사라진 것은 아팠기 때문인데. 그것들 모두 가지고서도 인생 다 바쳐 사랑하던 일 하나를 해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한 사람에게 어떤 상처인지, 사람들은 알고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 미친 사이코패스들. 정공룡은 이러한 댓글들에 싫어요 몇개를 눌러놓은 뒤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구석에 던져놓은 약봉지 집어든다.

 와르르 쏟아보니 그 안에 온갖 종류의 인 고며 밴드까지 한가득. 그것들을 앞에두고 또 작게 욕을 지껄였다. 이러면 내가 굽힐 수 밖에 없잖아, 하며 빨간 연고 하나 손에 쥔다. 

 어쩌면 네가 받았어야 할 것들. 오늘날의 내가 너에게 주어야 할 것. 네가 유난히 타인에게 지쳐있던 까닭은 이것이었나. 싶었다. 미처버릴 정도로 사랑하던 것을 한순간에 잃은 각별은 위태로워 보였다. 어쩌면 네게는 모든 순간이 위기였다.

 

보통아닌 사연을 구구절절 익혀가는 일방적인 정보 수집도 잠시. 친구라고 칭하기도 묘한 아이 사연하나 알았다고 하여 지긋지긋한 등교를 미룰수는 없었다.

 제게 관심이란 쥐뿔도 없는 부모가 원하는 유일한 것이 검사가 된 저의 모습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허울뿐인 1등, 숨막히는 넥타이, 정갈한 교복. 

 성질에 안맞는 범생이 짓을 근 몇년간 들키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도 제게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1등에, 누군가는 그가 주는 안정감에 취해 제 옆을 떠돌며 말을 이었다. 각별은 달랐다.

 교실에는 각별이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기사와 영상속 인물과는 달라보였다. 공통점이라곤 노란 눈과 검은 머리카락. 그뿐, 어떠한 공통점도 찾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1교시부터 민감한것을 물을수야 없지. 실은 속이 불타는듯 했으나 그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평소와 같이 친구들과 어울린다. 

 성적은 적당한 중상위, 눈치도 없이 칭찬과 선물에 실실 넘어가는 타입. 적당히 유머있고 인기있는, 그런 아이들과 어울려야 했다. 그것이 정답이었고, 각별의 사연은 그저 안타까울 뿐. 그뿐. 애초에 내가 무얼 할 수 있는데.

 똑같이 작고 병든 저가 그 애에게 해줄 수 있는것은 없었다. 그래서 고개 돌려버린 정공룡은, 각별의 노란 눈동자가 제 무릎의 상처를 훑고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오늘따라 안색이 안좋네." 

 "내가?"

 시시한 이야기에 맞장구나 쳐주며 웃고있던 제게 돌연 함께웃던 친구가 걱정스레 말해왔다. 그 말에 정공룡은 뜨끔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늦게 잠든 것 뿐이라고. 나는 괜찮다고 간단한 부정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한번 심란해진 마음은 정신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공룡은 자신이 적당한 타이밍에 웃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다. 같은 감탄사를 네번이나 연속으로 뱉었다는 것도, 그 때문에 슬슬 제 앞에 앉은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 또한 느꼈다. 그만 멈출때가 온 것이다. 각별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들을 끊어낼 때가 된 것이었다. 알고있었음에도. 

 "진짜 이상하다. 정공룡 너 정말 괜찮은거지?"

 "괜찮다니까."

 "아니면 혹시 몸이 안좋아?" 

 덜컹. 하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이목이 쏠렸다. 저가 아닌 각별에게. 근처에 앉은 상태로 내내 들리던 대화를 무시하며 엎드려있던 그가 불현듯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정공룡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어제 보았던 바로 그 표정으로, 무언의 강박에 찌든 사람의 표정으로. 정공룡과, 김각별 둘만이 알 수 있는 표정으로. 그제야 공룡은 저를 걱정스레 부르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여전히 초조해보이는 각별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제 무릎상처에 와닿는 시선 의식하며 그를 잡아 끌었다. 할 얘기가 있어. 작게 부른다. 각별은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고 저를 따랐다. 

 "다리 괜찮아?" 

 이유도 모르고 질질 끌려온 사람이 제 앞에서 뱉은 첫마디가 그것이다. 여전히 눈동자는 진득히 제 상처에 붙이고서 물어왔다. 그것에 또 기가찬 정공룡은 말문이 막혀 헛웃음 흘린다. 

 아프냐고, 세상에 서 제일 비참한 얼굴로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어쩌면 각별 스스로에게 건네야 했을 말을.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프고. 무엇하나 건강하지 못한 그들은 오래도록 마주보고 서 있었다. 

 "약 바른거 맞지? 밴드만 붙이면 안돼."

 "너 펜싱했었다며." 

 그 애 심장 내려앉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렸다. 어쩌면 각별의 표정으로 인한 환각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정공룡 그가 물은 그 질문이 각별에게는 확실한 상처였다는 것이다. 

 어엿한 상처, 슬픔, 절망. 차라리 네가 분노하고, 또 멱살 틀어 잡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각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애꿎은 입꼬리만 파들파들 떨어가며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떻게....."

 "기사봤어. 지금은 관뒀더라."

이것이 아님을 알았다. 물어서는 안되는 문제였다. 적어도 이렇게 쉽게 말 꺼내선 안되는 상처였다. 각별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굴었다. 

 핏방울 물방울, 그때 그 참혹한 경기장 가운데 에서 모두 쥐어짜고는 남은것도 없이. 관뒀더라. 이렇게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사건이었나.

 각별은 과연 펜싱을 관둔 것일까. 눈동자 중앙에 차마 떨어지지도 않는 미련 덩어리 매달고서 초라해진 네가 과연 펜싱을 관둘 수 있었을까.

 "정공룡." 

 그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똑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목에 물이라도 가득 들어찬 사람 마냥 꽉 막힌 목소리로 불리는 제 이름이 아팠다. 차마 재현도 못할 끔찍한 목소리, 끔찍한 표정, 그 안에 담긴 간절함. 

 그대로 굳어버린 마냥 돌이 되어있던 각별은 이내 혼이 빠진 공룡의 어깨를 거세게 틀어쥐었다. 힘이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떨리는 손이 온통 얼음장이었다. 

 "말, 말하면 안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펜싱, 네가 본거, 그러니까.....내가....."

 단어 하나하나 끊어가며 힘겹게 말 이어가는 각별은 숨이 차 보였다. 몸 깊숙히 호흡하며 들이쉬는 것은 분명 숨이었으나 그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사방이 지뢰였고, 또는 죽음이었고, 그러다가 정말로 반 송장같은 눈 하며 양 손만 바르르 떤다. 

 각별은 그랬다. 한때 길다란 칼 쥐고 잔뜩 호흡하던 사람, 사람이었던 그는 이미 죽어가는지. 공룡은 가까스로 그 충격 다스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말 안해. 할 생각도 없었고."

 "아....."

 공룡의 답에 각별이 탄식했다. 저를 추궁한다거나, 비난한다거나 제 과거를 조롱하는 부정적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인지함은 잠시였고, 힘없이 양 팔 축 늘어뜨리며 숨 고르던 각별에게 공룡은 또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들춰야지, 그만 해야지. 그것이 아픈 과거사든 행복한 꿈이었든간에. 정상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타인과 깊이 엮인다는 것은, 지금껏 정공룡이 지켜온 제 신념과 상당히 빗나가는 행동이었음에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온세상 행복 다 가진 얼굴로 웃던 애 하나가 추락했다. 동정인가, 호기심인가. 그도 아니라면, 모두 아니라면. 

 ".....펜싱 그만둔게 죄야? 왜 그렇게 무서워 해?"

 "그 얘기는 그만 하는게..."

 "너 아파서 그런 거잖아."

 정적이었다. 모두 들었을 각별의 어깨는 튀어오르지 않았고 생기없는 눈동자가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절박하게 제 어깨 틀어쥐고 말하지 말아달라며, 입술만 터지게 깨물지도 않았다.

 그저, 웃는데. 각별은 웃었는데. 또 숨막히는 제정신으로 제게 웃어 보이는 그 얼굴이, 꼭 여름밤에 마주한 귀신을 방불하게 하였으므로.

 ".....그러게."

 나는 아파서 그랬는데. 

 그렇구나. 이미 죽었구나. 뼈도 살도 싹싹 발라져서 조각난 뒷산에 묻힌지 오래였구나. 질리도록 쏟아지는 비릿한 관심에 즉사했구나. 흘린게 눈물만은 아니었구나.  

 들리지 않는, 들리지 않을 뒷말을 알았다. 너무 원통하고 원망스러워서, 차라리 그것 가슴에 묻고 닫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서러운 것이 꽉꽉 들어차서.

 억누르지 않으면 결국 조각나는 쪽은 각별일테니까. 항상 그랬으니까. 몇줄짜리 댓글, 기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지껄일 온갖 루머들에 상처받는 것은 고작 열아홉 고등학생 하나였으니까.

 "할 말 다 했으면 들어가자. 수업 시작하겠다." 

 또 지속되던 정적 끝으로 각별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었다. 맞지 않게 꽉 잡군 단추보다, 꽉 쪼인 넥타이보다 무언가 더 갑갑했다. 잔뜩 상처뿐인 얼굴에 덮어 그어진 생채기는 분명 방금 전, 저가 그어낸 것이었다. 

 더 아플것도 없는 공간을 열심히 파고드는 미친짓을 해내고야 만 것이다. 이 미련한 놈이.

 순간 공룡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느낀다. 가슴 찢어지는 슬픔, 상처 그런것들 아닌 찌릿함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평생을 느껴본 적 없었고, 느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미묘한 감정이 가슴을 쿡쿡 찌르고 들어왔다. 빵점짜리 시험지보다 두려운 것의 실존을, 처음으로 체감한 것이다.

 "미안해....!"

 이미 저보다 한참 앞질러가던 각별을 향해 뛰었고, 그 와중에도 울리는 찌릿한 통증에 절박한 눈살만 찌푸렸다. 등을 짚어 각별과 마주보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처음 뱉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선명한 죄책감. 동질감.

 

 그 날 각별은 3교시를 체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새파란 얼굴로 괜찮다며 웃어내던 그가, 먹은것도 없이 텅 빈 속을 연신 게워냈기 때문이었다. 

 교문 앞에 손흔드는 친구와 웃는 얼굴로 대면했다. 어째 만나는 이들마다 제게 관심이 많아 보였다. 복도를 지나 한걸음 한걸음 내딘는 발자국 뒤로 수근거림이 잔뜩 딸려 나온다. 

 워낙에 예민한 상태라 그렇지, 가슴아픈 사연을 연달아 들어 신경이 쓰이는 것 뿐이다. 그 미묘한 학교의 분위기에, 정공룡은 제 반을 향해 걷는 와중 몇번이나 이를 악 물었다.

 "쟤가 걔랑 친하다고....."

 "그럼 둘이 아는사이......."

 자신에게 관심을 둘 인물들이 아닌 아이들까지도, 마침내 죽은듯이 살아내던 제 모습에 고개돌려 무언가 속닥이는 순간이었다. 저번의 오토바이 사건이 학교에 퍼진 것인지, 도대체 무슨 변덕이 불어 제게 관심을 두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세좋게 고개만 기울이던 정공룡의 안색 새파랗게 질리던 것은, 화질 좋은 반 컴퓨터에 대문짝만하게 틀어지는 각별의 경기 영상을 마주한 뒤였다.

 그 모든 것은 저를 향한 관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친......" 

 학교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도 깜빡 잊을만큼 급박한 비속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걸음마다 진탕 옮겨붙던 시선들, 그것은 또 각별을 향한 것이었다. 

 시선 피해 도망친 그 애, 아무도 관심주지 않던 전학생 어깨 토닥이며 보란듯이 학교를 소개한 이유로 제게 붙던 시선이다. 정공룡은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큰 소리로 올리는 기합소리와 튕기는 쇳소리의 마찰음을 지켜본다.

 옹기종기 tv앞에 모인 아이들이, 살벌하거나 우습다거나, 또는 동정어린 눈빛으로 그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개미하나 밝혀 죽는것에, 그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인두껍 뒤집어 쓴 개미 하나가 와르르 터져가는데, 그런데, 그게 재밌다고. 너희는.

 "정공룡 왔냐? 여기와서 이거 봐봐 얼른, 진짜 대박이야." 

 나름 옆에 둘만하다 싶었던 반 아이 하나가 굳은 그를 부르며 손짓했다. 의자까지 놓고 앉은 꼴들이 하나같이 양식장 금붕어들 꼴이라 구역질이 일었다. 

 부르는 손짓에 악의없는 흥분만 눈에 띄었다. 각별은 아직 반에 없었다. 정공룡은 홀린듯 대꾸없이 걸음을 옮겨 거대한 tv앞에 선다. 그들중에 유일한 인간이었다. 

 

 정공룡은 이제 끔찍하다는 눈 하고서, 밀리고 넘어지며 망가지는 그 애 꿈만 지켜보아야 했다. 그래야 했다.

 친구는 비웃음을 원했고, 등교 전이었던 각별에게 전화까지 걸어가며 알리기에 저는 이루어야 할 것이 많았고, 또 세상이 그것을 원했다. 각별이 비난받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걸 깨고 각별을 택하라고? 정공룡은 이제 조금 울고 싶었다. 화면에는 이미 눈물젖은 각별이 가득이다.

 "너도 얘 펜싱했던거 일았어? 어제 발견한건데 김각별 완전 악질이더라. 순 재능도 없으면서 대표라고 설치다가 나락간 거라며." 

정공룡은 그렇게 재능 넘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생기 넘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렇게 숨쉬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흔들리지 않는 것 또한 처음 보았다.

 칼 끝의 정확도와 빠르기와, 또 모든 재능을 능가하는 노력을 눈에 담았다. 순간 그는 전율한다. 

 아무도 그것을 모욕하듯 비웃어서는 안되었다. 그 애가 얼마나 황홀 했는데, 짧막한 경기영상 하나에 담긴 모든 울분을, 그저 분노로 이해하게 둘 것인가.

 정말로 울것같았다. 나는, 나는 정답을 아는데, 그런데 정답은 왜 있는 것인지. 애초에 내것인데, 스스로 고뇌할 문제에 이미 지정된 정답만 수백이구나. 인지해낸 정공룡 결국 화면속 각별과 눈 마주하고. 

 "좀 닥쳐."

 친구는 공감을 원했으며 세상은 그의 모든 재능을 비난하길 원했고. 그리고 부모는 평화를 원했다. 공룡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싸하게 식어버린 공간에 큰 소리로 뱉은 문장 하나의 뜻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정공룡은 각별을 선택했다. 처음으로 모든것이 부질없었다. 기묘한 해방감이 들어 온몸이 떨렸다.

 "할 줄 아는건 방관밖에 없는 것들이...아까부터 뭘 안다고 시시덕거리면서 웃는거야?" 

 "너 진짜 돌았구나. 걔가 자기 편 들어달라고 부탁했어?" 

 "생각하는 꼬라지 봐. 무식하면 입을 닥치라고." 

 고함소리가 난무했다. 개중에는 제 멱살 움켜쥐려는 이들이 있었으나 애초에 번번히 은밀한 싸움 일삼았던 정공룡에게 위협을 가할수야 없었고. 그는 그대로 허를차며 몸을 틀었다. 

  교복 단추하나 빠짐 없이 잠구고, 내내 싱글벙글이던 그가 뱉은 첫번째 진심이었다. 뒤에서는 수근거리는 비웃음 몇개와 돌발행동에 놀란 이들의 웅성거림이 뒤따른다. 

 저가 원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너 이제 어쩔래? 망가진 귀에 부모의 목소리가 은은히 멤돌았다. 그때에 정공룡은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부활을 원해요. 생기를 돌려낼래요. 닥치는대로 뛰었다. 

 중간중간 제게 말을 걸거나 저를 잡으려 뛰어오는 화난 이들은 빠르게 무시해내며 교문 앞까지 달릴 생각으로 뛰었다. 각별과 뛰었던 그때보다, 어쩌면 더욱 빨리. 

 그 애와 엇갈렸다면, 이미 걸렸다면. 그러한 끔찍한 생각들 단박에 멈춘 것은 태연한 얼굴로 복도 걸어오는 각별을 마주하며 새하얗게 증발한다.

 

- 좋아하는 거요? 펜싱이요! 저는 펜싱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평생 그것만 할 수 있어요. 그게 저를 살아있게 해요.

 이른아침 정공룡의 손에 질질 끌려 뜀박질 시작한 각별의 귀에는 어쩐지 익숙한 지난날의 제 목소리가 둥둥 떠다녔다. 이유도 모르고 그러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등교에 유난히 쏟아지는 이목으로 조금 움츠러들 때 즈음, 벼락처럼 달려 나타난 공룡이 저를 붙잡고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잠이 부족하여 울리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각별은 조금 화가난다. 이유도 모르고 붙잡혀 끌려가는 게, 벌써 두번째였다. 습관같은건가. 생각한다. 

 "너 뭐하는데! 나 등교중인거 안보여?"

 "잔말말고 뛰어."

 "저번부터 제멋대로 구는데, 정공룡...!"

 쏜살같이 복도를 달리며, 끌려가며 가까스로 따져묻는 제 목소리에 짧게 대답한 공룡이 밉살스러웠다.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제 말을 들을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성큼성큼 그 보폭에 맞춰 끌려가던 각별은 순간 하려던 말을 멈추고 휘청 기울어진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찌릿한 고통이 발목에 고여 충격을 가했다. 그 휘청임 알아차렸는지 공룡이 자리에 멈춰섰다. 

 "너 발목이....."

 무언가 따끔하는 눈빛으로 주저앉은 각별에게 건네려던 공룡의 말은 묻힌다. 어느 인기척 하나에 완전히 묻힌다. 

 아픈 발목 감싸쥐고 주저앉은 각별의 어깨를 잡은 이름모를 반 친구의 행동 하나에 어느새 그는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그정도로, 이름모를 반 아이가 뱉은 문장 하나가 강력했다. 복도에 모인 모두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김각별이지? 나 너 알아."

 "...뭐?"

 "너 경기 지고나서 펜싱 관둔 애잖아."

 발목을 감싸쥔 손에 들어간 힘이 스르륵 빠져나간다. 히죽이며, 그게 얼마나 무거운 말인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애의 표정은 저가 간절히 피해다니던 것 그 자체였으므로. 각별은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꺽꺽 목 막히는 숨소리만 간신히 내뱉었다. 잔뜩 확장된 노란 눈동자 안으로 서러움이 보였다. 분노할 기력도 없는 통곡이 흘러넘친다.

 "너 때문에 같은 팀원들도 다 졌다면서. 혹시 그래서 전학온거야? 찔리니까?"

 비꼬는 말투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온통 자만과 우월함과. 추락한 별똥별은 추락하고 난, 울퉁불퉁한 모습 그대로 잔뜩 팔려나간다.

 우주와 대기 사이 가로지르며, 한때 누군가의 소원이었던 것이 추락한 결과는 늘 그러했다. 불티나게 거래당하고, 값이 매겨지고. 정의당하고. 분석당하고. 

 정말 별똥별을 닯았네. 우습게도 멍한 머리로 할 수 있는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차마 대꾸할 여력도 없이, 제 뒤에 버티고 선 정공룡의 주먹이 그 애의 얼굴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아 미친, 정공룡!"

 비명섞인 욕설과 함께, 족히 삼미터는 나가 떨어진 웃는 얼굴에 각별은 푸하, 참고있던 숨을 내쉬었다. 어질어질한 시야속으로 남자애의 얼굴에 정확히 내리꽂히는 살벌한 주먹질만 멍하니 응시했다.

 입술이 터지고 눈이 멍들고. 그 와중에도 뜯어말리는 이 없이, 저보다 서러워보이는 정공룡의 일방적 싸움을 인지한 순간에야 각별은 벌떡 일어나 그를 말릴 수 있었다. 

 때린 것은 누가 보아도 정공룡. 피해자는 제게 아픈 말 쏟던 반 아이. 너덜너덜한 그 애의 모습을 보고 각별은 공룡이 결코 가벼운 처벌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저 때문에. 검사가 꿈이라던 정공룡의 꿈이 조각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겠다는 것 또한 짐작한다. 

 그러나 각별이 간과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서 정공룡은 항상 짐작을 벗어난 존재였다는 것. 방실방실 웃던 범생이가 오토바이를 훔치고, 제 과거를 협박 삼아도 될 상황에는 사과를 건네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정공룡은 보기좋게 각별의 짐작을 비껴간다.

 그는 모범생이었고 그만큼 탄탄한 인지도와 신뢰가 쌓인 사람이었으므로 정공룡이 또박또박 건넨 상황 설명에 선생님은 수긍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폭력은 죄였고, 정공룡 또한 그것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으므로 봉사시간 몇시간을 받아내어 교무실을 빠져나온다.

 각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시간도 안될 찰나에, 아팠다가 놀랐다가 안심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조퇴증을 받아, 함께 조퇴를 신청한 정공룡과 교문을 빠져 나왔다. 

 "김각별 잠깐 나랑 어디 좀 가자."

 "또 어디를 데려가려고."

 "무작정 끌고가지는 않을테니까. 이상한 곳 아니야. 어차피 시간 남아돌잖아."

 싸움을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얼굴에 정갈한 와이셔츠, 조끼 걸친 그가 웃어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잔뜩 화나있던 주제에.

 각별은 그 분노가 저를 위해 나온 감정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낯설었다. 그의 부모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아파서 그랬구나, 이해하지 않았고 저를 잡아 끌지 않았고. 저 하나만을 위해 부당한 상황에 나서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저 스스로도 제게 그리하지 못했다. 

 "갈거지?"

 ".....그래."

 그러니까 이건 불가항력에 가까운 것이라고. 죽은 저를 산 사람 대우한 것은 어쩌면 네가 처음이라.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 맞잡는 것은 당연하다고. 

"너 미쳤어...?"

 "주먹질 좀 했다고 미친사람 취급이냐?"

 "나를 왜 체육관으로 데려오는데."

 각별은 제 눈앞에 드러난 큼직한 건물을 외면하려 애썼으나 이미 익숙한 포즈로 건물 내부에 끌려 들어가는 중이었다. 체육관은 발목에 부상을 입고 펜싱을 내려놓은 뒤로 철저하게 외면하려고 했던 것들 중 하나였으므로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끼익 거리는 바닥과 신발의 마찰음, 쿰쿰한 고무냄새와 약간의 땀냄새. 후끈한 열기를 다 감춰주지 못하는 에어컨 바람. 모든것이 소름끼치게 그리웠으나 어찌되었든 이제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인데. 각별은 공룡을 불신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체육관 오랜만이겠네."

 "됐어, 나갈거야."

 "안돼 넌 여기에 있어야 해."

 "그만좀 해! 이제 다 지긋지긋하니까."

 드러난 내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발끈한 각별이 공룡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간신히 묻어두려는데. 이제 정말 묻혀가고 있었는데. 거의 다 왔는데. 거의 다 죽었는데. 

 만난지 일주일도 체 안된, 심지어는 똑바로 분석할 수도 없이 엇나가기만 하는 정공룡, 이 애 하나가 다 묻혀가는 제 위에 흙을 퍼내고 있었다. 그래봤자 깊다고, 너 따위가 들어올릴 무게가 아니라고. 

 상황에 맞지도 않게 서러움만 몰려왔다. 정말로 쉬고싶었다. 모두 회피하고 외면하고 토해내다가 껍질만 남은 그 상태 그대로, 더이상 아프지 않게. 

 "아픈건 바로 치료해야 한다며."

 네가 그랬잖아. 네가 그래서 아프잖아. 묻어서 아프잖아. 

 제 귀에 틀어박히는 문장 하나에 각별이 덜컥 몸을 멈췄다. 숨도 멈춘다. 저가 공룡에게 밴드와 약 건네며 잔뜩 외쳤던 말 그대로였다. 아픈건 바로 치료해야 해. 각별아, 아픈건, 아픈건 말이야.

 "자, 받아."

 "이거....."

 길다란 막대기 하나 내밀어 각별의 시선 집중시킨 공룡이 씨익 웃었다. 이리저리 뒹굴기 바쁜 노란 눈동자에 굳게 시선 맞추고, 너에게 하는 말이라며, 뒤따라 들어올린 막대기 하나를 덩달아 손에 쥐었다.

 뒤이어 나오는 엉성한 자세. 펜싱에 대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우선 키득이는 비웃음 먼저 내뿜게 만들만큼 어설픈 폼으로 막대의 끝을 각별의 어깨에 툭 얹는다.

 "지금부터 나는 너랑 경기를 할거야."

 경기, 한 단어에 습관처럼 들뜨는 버릇이 스물스물 몸을 타고 기어올랐다. 듣지 말고 느끼지 말고. 언젠가 날아오른 그때를 마냥 선망하며 그리워 할 바에는 평생을 묻고 살겠다던 다짐 하나에 금이간다.

 각별의 표정은 묘했다. 그리웠고 또는 화가나있었고, 그러다가 간절한 들뜸이 가득했다. 모를 수 없었다. 눈빛만은 벌써 날고 있는데. 각별 자신만 몰랐다. 묻었다고 자신한 미련이 뚝뚝 흘러 결국은 제게까지 이르렀음을. 

 "넌, 펜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런 너랑 경기를 한다고 해봤자...."

 "김각별!"

 시야가 흐렸다가.

 "집중해!"

 펑, 하고 무언가 터졌다. 각별의 속에서, 혹은 밖에서. 탑처럼 쌓아올리고 저 스스로 묻어가던 몸뚱이를 누군가 손 하나로 파냈다. 깨어난 곳은 경기장이었고, 카메라와 함성과 시선과 땀방울 가득한 코트 위.

 각별은 순간 저가 미친건가, 싶었다가 무의식 속에 탄식한다. 꿈을 묻은 곳 조차 꿈속이었구나. 코트 안에 코트를 묻었구나. - 좋아하는 거요? 펜싱이요! 저는 펜싱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평생 그것만 할 수 있어요. 그게 저를 살아있게 해요. - 그게 저를 살아있게 해요. - 그게 저를 살아있게 해요. - 좋아하는 거요?

 펜싱이요!

각별은 모두 피해냈다. 리듬과 박자와 규칙도 없이, 마구잡이로 불쑥불쑥 매너없이 들어오는 긴 나무 막대를 너무나도 자연스레 모두 피해냈다. 머리카락 끝 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본능에 가까운 걸음이었다.

 가볍게 통통 튀었다가, 뒤로 빠지고, 앞으로 나갔다가 몸을 비틀어 허리를 틀었다. 식은땀 흥건한 손에 쥔 막대기가 서서히 들썩였다.

 일방적인 찌르기에 일방적으로 피해내던 그 모습은, 차라리 위기에 가까웠으나. 그러나 각별에겐 기회였고 세상이고, 그랬다가. 

 

 그 막대는 돌고 돌아 각별의 발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여전히 길다란 막대만은 들지 못하고 피하기만 연속하던 그의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을, 공룡은 분명 보았다. 

 '나는 그 애의 부활을 원해요, 생기를 원해요.' 원하던 것은 이루어지고, 흡족해서 웃는다. 각별이 손을 들어올려 제 어깨를 향해 뻗고 있었다. 

 그 가벼운 막대 하나가 족히 100근은 된다는 듯이, 힘겨워서, 간절해서, 살아있어서 내보일 수 있는 표정으로. 저를 찌른다. 완벽한 부활이었다. 

 

 

 경기가 끝난 체육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각별이고, 공룡이고 할 것 없이 땀 범벅이었다. 각별의 얼굴을 적신 것은 눈물이 아닌 땀이었고. 정공룡의 갑갑한 넥타이와 조끼는 풀어지고 던져진지 오래라. 

 숨이 차 헐떡이는 와중에도 자유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각별도 그러했다. 숨보다 가슴이 벅차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치도록 고맙고, 또 행복해서. 발목이 아프지 않아서.

 "고마워...."

 애써 누르는 흐느낌 소리에 땀에 젖은 몰골이란 하나같이 괜찮아 보이지 않는 것 투성이었음에도 덩달아 숨만 내쉬는 공룡은 그에게 괜찮으냐 묻지 않는다. 

 새파랗던 얼굴이 빨갛고, 칙칙한 눈에 광이 돌았다. 사이보그 마냥 설렁이던 목소리에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 정공룡이 생각했다.

 "나 계속 뛸거야."

 다리는 낫지 않았고, 아프다는 말이 결코 과거로만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유망주가 되어 찬사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온갖 구설수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것 또한 알았다. 

 "근데 아마 계속 넘어질거야."

 꺾이고 또 꺾이고. 꽃 옆에 잡초마냥 타인의 눈길에 거침없이 상처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별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어서 견뎌야 할 시련이었으니까. 죽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제 안중요해. 그딴거 정말 상관도 없어.."

 각별은 제 주머니에 늘 자리잡았던 익숙한 무언가를 꺼내 쥐었다. 조그마한 브로치. 그것을 알아차린 공룡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웃었다. 각별이 경기마다 지니던 브로치였다.

 행운이자 불행이고, 꿈이던 것에 늘상 함께하던 것을 미련없이 공룡의 손에 쥐어주었다.

 너도 이긴 경기니까. 이건 너 줄게. 하는 말에 주저없이 끄덕이며 공룡은 그것을 제 손에 쥐었다. 열기 머금고 뜨거워진 브로치가 꼭 그 주인마냥 들떠 보였다. 

 훈련을 시작할거고, 대회에도 나갈거야. 몇배, 몇천배 죽을만큼 노력할거고 그러다가 나는 또 질거야. 기사는 실패와 극복에 대해 쉼 없이 떠들테고 가는 곳마다 비웃음이 따를거야. 아플거야. 그래도 공룡아, 공룡아.

 "나는 펜싱을 할거야."

그 뒤로 바람처럼 사라진 각별의 소식을, 정공룡은 기사로 접할 수 있었다. 온갖 훈련으로 시간조차 없는 그에게 연락이란 사치였고 그만큼 각별은 바빠졌으니까. 

 한창 들려오지 않던 소식에 걱정할 때 즈음. 들려오는 것은 결국 희망이다. 성공이고. 언제일지 모를 실패 두려워 하지 않을 각별 앞에 장애물이란 없다며. 정공룡은 또 피식 웃는다.

 

 [펜싱선수 김각별, 부상 딛고 일어나 기적의 금메달]

 "얘 봐라. 아주 날아 다니잖아."

 키득이는 정공룡이 검은 반팔 차림의 저를 내려다보았다.달라진건, 너 뿐이 아니네. 하고 또 밝게 웃어냈다. 

 비록 미래는 보이지 않고, 어딘가가 꺾이고 다칠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은 너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숨쉬기 때문이라고.

 

공룡은 기사를 끄고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거품을 물며 저를 붙잡는 부모에게서 독립한지는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참이었다.

 네 꿈 덕분에 나는 꿈을 찾았구나. 신기할 정도로 들어맞는 각별과의 인연에 짧게 감탄했다. 처음만난 그 날, 훔치려던 오토바이와 짧은 인사와, 아찔한 사과와, 체육관 가득 울리던 웃음소리.

 기적같은 스토리로, 기적처럼 재회할 스포츠 기자 정공룡과, 국가대표 김각별의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별똥별

W. 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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