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어둠의 저편에서 빛이 반짝였다. 아주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빛은 시선을 끌었다. 그러고는, 점점 빛이 커지기 시작했다. 티끌만 했던 빛이 이제는 거대한 태양이 되어 방랑자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태양이 되어버린 빛은, 번쩍하고는 시야를 어지럽혀 놓았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공간 너머에서 규칙적인 삐- 삐- 소리가 들려왔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알람 시계가 공룡의 잠을 깨웠다. 그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눈치 없이 일하는 알람 시계를 노려보았다. 그의 시계는 매우 구식이라 가끔 오작동할 때가 많았다. 시간을 바꿀 수 없는 시계라고 할까. 그 시계는 분침은커녕 초침도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기준 시각도 달라서 공룡은 이 시계에 익숙해지는 데에 매우 애를 먹었다. 결국에는 시차를 계산하고 고려하여 알람을 어찌저찌 맞추기는 했지만... 가끔씩 뒤로 흘러가는 시간에 자꾸만 엉뚱한 시간에 알람이 울렸다. 그런데도 이 시계를 버리지 않는 이유는, 이 구닥다리 시계는 특별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계라고나 할까. 겉모습은 평범해 보여도 이 시계는 공룡이 어렵게 구한 시계였다. 직접 운석이 떨어졌던 곳에 힘들게 가서 주운 이상한 시계였기에, 더욱 애정이 컸다.
공룡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은 공룡 딴에는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얼마 전 새벽이었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 전체가 흔들렸다. 시끄러운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다름 아닌 운석이었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운석은 마을 뒤편에 불시착한 커다란 운석에 한동안 마을은 운석 이야기로 관심이 쏠려있었다. 공룡은 이러한 사건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여겼다. 그 이유는 공룡이 우주와 미지의 공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예상 밖의 전개는 공룡을 설레게 했다. 그는 장래 희망이 천문학자인 만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심연의 비밀을 연구하고 싶어 했다. 물론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부모님과 갈등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공룡의 부모님은 공룡의 좋은 성적으로 더 나은 직업을 가지길 원했다. 하지만 공룡은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천문학자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공룡이 애정하는 시계도, 그 운석 근처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그때는 너무 늦어진지라, 조금밖에 탐사하지 못했기에. 공룡은 오늘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오늘은 주말. 즉 아무도 공룡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공룡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옷을 대충 갈아입고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쉽게도, 운석은 이미 연구용으로 가져간 건지 운석이 떨어진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뭐, 상관없었다. 물론 운석이 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다른 멋진 비밀들이 이 쓸린 자국에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공룡이 막 조사를 시작하려던 차,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공룡이 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본 순간, 어떤 한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모르게 부스스한 긴 머리카락과, 한 번도 본 적 없는 스타일의 패션. 그리고 졸려 보이는 호박빛 눈동자. 공룡은 그 눈동자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잠깐이었지만, 그는 공룡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어색한 기류가 둘의 사이에 오묘하게 흘렀다. 물론 그 기류는 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의문의 남자는 공룡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그대로 풀숲으로 사라졌다.
'... 뭔 저런 사람이 다 있어...'
공룡은 남자가 향한 풀숲을 멍하게 쳐다보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다. 아, 내가 이럴 시간이 없는데!!! 그는 후다닥 본래 자신이 하려고 했던 조사를 마저 하기 위해 운석의 흔적 쪽으로 달려갔다. 다만 공룡이 간과하지 못한 점 하나는, 아까 그 남자가 공룡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주 흥미로운 눈으로 말이다.
주말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이상하게도 시계는 공룡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을 때만 요란하게 울리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어젯밤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천문학책을 다 읽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본다고 빌려놓은 책이 방치되고, 결국 반납 전날까지 반도 읽지 못한 것이었다. 그 바람에 공룡은 2시간도 자지 못했다. 평소보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시계에 공룡은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학교 갈 수 있었다.
예전부터 공룡의 자리는 창가일 때가 대다수였다. 단순한 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룡은 거의 항상 창가 자리로 배정이 되었다. 공룡은 이에 만족했다. 수업이 지루할 때 고개를 옆으로 꺾기만 하면 푸르른 하늘이 공룡을 맞이했다. 가끔씩 운이 좋으면 낮달을 볼 수도 있었다. 물론 너무 창밖만 바라보면 주의를 받기도 했다. 현재 공룡의 자리는 창가에다가 맨 뒷자리인데,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이전에 짝이었던 아이가 전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공룡은 두 책상을 같이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공룡의 자리 독점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부로 우리 학급에서 지내게 될 친구다. 다들 잘 챙겨주도록."
맙소사. 그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주말에 봤던 그 남자가!! 분명 지구의 사람이 아닌 것 마냥 옷차림이 괴상했는데 교복을 입으니 누가 봐도 평범한 학생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공룡은 지금 저 앞에서 반 학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남자를 벙찐 상태로 바라봤다. 각별... 이랬던가. 각별은 공룡의 바로 옆에 앉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눈빛을 갖춘 채.
공룡과 각별은 서로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필요한 대화가 아니라면 서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물론 그건 공룡의 시선이기는 했다만. 공룡은 각별이 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그때 그곳에서 입고 있던 이상한 옷은 무엇이고... 풀숲으로는 왜 사라졌는지 등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을 초면에 대놓고 하기는 매우 무례했기 때문에. 그리고 각별이 먼저 말을 건 날도 없었고. 그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각별이 처음으로 공룡에게 말을 걸었다.
"너 혹시 우주에 관심 있어?"
첫 대화라기에는 다소 의아한 질문이었다. 평소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해 물어보다니. 의문을 가지기도 잠시 공룡은 우주라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고는 술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헐 어떻게 알았어?? 나 천문학자가 꿈인데.. 왜? 네 지망도 그 쪽이야?"
"뭐...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천문학에 관심 있다고? 잘됐다. 나 좀 도와줘."
그렇게 공룡은 영문도 모른 채 단지 천문학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각별을 도와주게 되었다. 물론 그 도와준다는 게 뭘 도와준다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공룡이 각별에게 더 물어보기도 전에 각별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주 주말, 공룡과 각별은 운석이 떨어졌던 곳에서 만났다. 각별은 주위를 불안하게 살핀 후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날 여기서 마주쳤던 거 너 맞지? 다름이 아니라 지구에서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날이 언젠지 알아?"
"음... 오늘이 6일이니까... 다음 주쯤 일걸? 그건 왜?"
"아... 아니 별 건 아니고... 뭐... 개인 사정이 있어서 그래..."
각별은 얼버무렸다. 무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잘못을 한 것처럼 공룡의 눈을 피했다. 공룡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얘는 뭘 원하는 걸까. 보름달이 뜨는 날 정도는 알아서 찾아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있잖아 이런 질문 실례일 수도 있는데..."
"아 그게 내가 다 설명할 게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뭐?"
"그러니까... 지구에 불시착 한 거라고? 네가?"
공룡은 각별이 말장난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우주를 건너 지구로 왔다는 말을 믿을까. 하지만 장난이라기에는 각별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공룡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얼어붙은 공룡에게 각별은 자신의 우주선을 보여주겠다며 풀숲으로 향했다. 공룡은 홀린 듯이 각별의 뒤를 쫓아갔다. 해가 진 터라 풀숲은 정말 어두컴컴했다. 잠깐이라도 한눈팔면 길을 잃어버릴 듯했다. 그런 길을 각별은 잘도 찾아갔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우주선에 공룡은 입을 떠억 벌렸다.
"내 우주선은 달빛을 연료로 써. 저번에 지구 수업 들었던 게 신의 한 수였어. 우리는 다른 연료를 쓰긴 하는데, 달빛도 원료로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고마워. 다시 우리 행성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각별은 우주선의 연료를 채운 후, 지구를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청춘의 추억을 채운 사건이, 오래도록 공룡의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공룡의 꿈도 더욱 확신에 차게 되었다. 언젠가는, 저 우주 너머에 있을 각별을 다시 망원경으로 만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