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귀신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반에는 귀신이 있다.
공룡은 오늘도 벌레가 가득한 집을 나온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이상하게 벌레가 계속 꼬여 지금은 없애기를 포기한 상태이다. 아직 6시라는 이른 아침이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아 항상 이 시간에 집을 나와 꽤 거리가 있는 자신의 고등학교까지 걸어서 갔다. 중학생일 땐 그 거리로 걸어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고등학생이 되니 생각보다 걸어가는 것도 괜찮아, 입학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하루도 빠짐없이 걸어가고 있다.
학교에 도착하니 7시 20분이었다. 반에는 역시 아무도 없다. 공룡은 자신의 먼지투성이 책상에 앉아 가방을 대충 걸고선 매점으로 갔다. 사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이것도 어느새 하나의 루틴이 되어 그저 아무 의미 없이 걸어갔다. 매점에는 역시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 물론 그저 평범한 사람이 보는 시점에선 말이다. 공룡은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밝게 평범한 인간들에겐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오늘도 좋은 아침!]
공룡의 밝은 목소리에 그들은 잠깐 그를 쳐다보았다가 금세 무시하고선 다시 원래 하고 있었던 일을 했다.
뭐 예상은 했지만, 공룡은 살짝 은 서운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선 다시 기운을 차린 듯 방긋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학교 뒤 편에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살짝 금이 간 시계를 보니 아직 8시 6분이었다. 먀옹- 고양이 한 마리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그의 다리를 부비적거렸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공룡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츄르를 꺼내 고양이가 쉽게 먹을 수 있게 자신의 손에다 쭉 짰다. 고양이는 기쁜 듯 다시 공룡의 다리에 부비적 거리다 츄르를 햛짝였다. 교실로 돌아가니 아까보다 많은 학생이 도착해있었다. 공룡은 그들 사이를 지나 자신의 책상에 털썩 앉아 다음 수업 시간에 필요한 교과서와 필기구를 꺼냈다. 그러자 술렁이던 교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반 아이들 모두가 공룡의 자리를 가리키며 경멸의 눈빛으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쟤 또 왔어?"
"하..오늘 재수 없는 날인가 보네."
공룡은 그런 시선이 익숙한 듯 옆에 있는 창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여느 때와 같이 파랬으며 솜사탕 같은 구름이 둥실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새들은 무리지어 넓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람은 기분 좋게 살랑이며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시계를 다시 보니 어느새 8시 30분이었다. 곧 조회가 시작될 텐데 반은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다. 자리 위치를 보니 그 녀석의 자리였다.
[오늘은..안 왔으면..]
공룡은 옆에 있는 친구가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그러자 뒷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남학생이 뛰어온 것인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자리에 쓰러지듯이 앉았다.
그 남학생이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습하고 있던 아이들은 그에게 우르르 몰려가 손수건부터 초콜릿까지 크고 작은 선물을 주었다.
"김각별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너 조금만 늦었으면 지각할 뻔.."
그러자 각별이라는 남학생은 피곤한 얼굴로 작게 웃으며 "어제 숙제를 못 해서 밤새웠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8시더라고..그래서 부모님 차 타고 왔어." 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손을 작게 흔들었다.
숙제 때문에 밤을 새웠다는 실없는 이야기에 반 아이들은 공룡을 제외한 체 모두 까르륵 거리며 앞으로는 숙제 좀 그날 당일에 끝내라며 작은 핀잔을 주고선 어젯밤에 있었던 소식에 관해 이야기를 잠깐 했다. 그러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와 모두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루하던 조회 시간이 끝나고선 선생님은 공룡의 자리를 잠깐 보더니 아주 잠깐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잔뜩 적힌 종이들을 가지고 교무실로 돌아가셨다.
선생님이 문을 넘자마자 모두들 다 같이 짠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별이 있는 곳으로 가 아까 하다 말았던 이야기들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저런 유치한 이야기가 뭐가 즐거운지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며 기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각별이 그 한마디를 하기 전까지.
"정공룡 왔어?"
각별은 싱긋 웃은 체 공룡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그래 왔어]
공룡은 저 미소가 싫었다. 위선자의 미소, 가식적인 미소. 오직 공룡만이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인척하는, 인간의 껍데기를 쓴 귀신일 뿐이다. 처음에 공룡도 각별이 귀신, 아니 귀신을 한참 넘은 악귀일 줄은 몰랐다. 오히려 그를 친구로서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이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공룡은 그때가 가끔,아주 가끔 그리웠다. 그와 같이 땡땡이를 치면서 선생님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던 날이 담을 너머 맛없는 코다리 강정 대신 양념치킨을 먹으러 갔던 날이 정말 재밌었고 즐거웠다.
그 날, 그 일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공룡은 각별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각별은, 공룡의 가장 친한 친구를, 죽였다.
아니 죽인다는 표현 보다는 흔적도 없이 없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우중충 했었다.
오늘따라 각별이 보이지 않아 공룡은 평소 그와 함께 자주 갔었던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옥상 문 손잡이를 잡아 돌리려고 한 그때 옥상에서 각별의 목소리와 공룡의 소꿉친구이자 절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각별아 김각별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너한테 피해 준 건 단 한 개도 없잖아!]
"피해..피해라.. 너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이 학교에 있는 게 가장 큰 피해 아닐까? 모두들 너 때문에 다 두려워하고 있는데.. 넌 이게 피해가 아니면 뭐라고 생각해?"
[아니 제발.. 각별아 너 공룡이랑 친하잖아, 공룡이를 봐서라도 한 번만, 딱 한 번만 봐줘 나한테도 시간을 줘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소꿉친구의 절박한 목소리, 각별의 싸늘한 태도. 공룡은 아직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확실한 것은 공룡이 얼른 이 상황을 중재시켜야 한다. 그 한 가지 뿐이였다.
공룡은 손잡이를 부수듯이 잡아 땡겨 각별과 친구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각별은 어딘가 익숙해 보이지만 평범하지는 않은 이상하고도 기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공룡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쟤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구나.
"정공룡 비켜. 너가 그렇게 부탁해도.."
[난 절대로 안 비켜 너의 정체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니야, 이건 뭔가가 잘못 되었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퍽 우스워 보였다. 각별은 실소를 터트리고선 다시금 정색을 하더니 빠르게 공룡의 목덜미를 잡아채고선 그를 내동뱅이 쳤다. 그러고선 공룡이 막을 틈새도 없이 그의 친구에게 뭔가를 붙이더니 옥상에서 떨어트렸다.
정말 순간적이었다.
공룡이 몸을 일으켜 난간으로 기대 친구의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그 어느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공룡의 눈에 눈물이 차올라 그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늘도 공룡의 마음을 안 듯이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공룡과 각별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몇시간 같은 몇분이 지나자 각별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건 유감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난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 짧은 한 마디를 뒤로 한 체 각별은 옥상을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그게 벌써 3달 전이였다. 지난 3달간 공룡과 각별은 특별한 이유가 아니느 이상 서로를 아는 체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무슨 이유로 각별은 오늘 공룡에게 말을 건 것일까
호기심을 참지 못한 공룡은 1교시가 끝나자 마자 소란스러운 틈을 타 각별에게 몰래 다가가 앉아 있던 그에게 그 날, 그 일이 있었던 옥상에서 점심시간에 만나자며 제안을 했다.
사실 제안이라기 보다는 지시에 가까웠다. 그 지시 속에는 각별이 자신을 무시할리가 없다는, 자신의 권유 아닌 지시를 무시할리 없다는 자신감이 살짝 묻어져 나왔다.
각별은 아까 공룡에게 지었던 위선의 미소를 내고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또 한 번 지루한 수업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각별은 금세 나타나지 않았다.
공룡은 아무도 없는 옥상에 누워 눈을 지긋이 감았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으아악!!!!!!!!!!!]
각별은 공룡의 반응이 웃기다는 듯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그러자 공룡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 공룡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선 입을 손으로 턱 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고 각별은 공룡의 행동에 이번엔 더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만 웃고 여기 앉아봐]
"아..그래 그래.. 역시 반응이 웃기다니깐"
진짜 어이없어, 공룡은 각별에게 짧은 평을 내린 뒤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저번에 옥상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불렀어 너도 잘 알고 있지? 그날 일을 말이야]
웃던 각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때와 같이 각별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공룡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내 친구한테 왜, 그런거야? 너 정체가 뭐야? 너..정말 귀신이야?]
"귀신? 내가? 너 정말 진심이야?"
각별은 잠시 멈칫 하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귀신...그래 귀신이라 너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님 알고 있는데 그저 모른 체 하는거야?"
[뭐가? 뭘 말하는 건데]
"귀신은 내가 아니라 너잖아 난 그저 네 친구 같은 악귀를 처단한 거 뿐이야. 너 정말 몰랐구나. 그동안 생각 안 해봤어? 왜 모든 아이들이 널 싫어하고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지 정말로 몰랐어? 왜 고양이들이 너를 좋아하는지, 프린트를 나눠줄때 너만 빼고 나눠주는지 선생님들이 너에게 발표를 단 한 번도 시킨 적이 없는지, 아무리 뛰어도 왜 힘들지 않는지 정말로 단 한 개도 의심한 적이 없어?"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각별의 말에 공룡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내가?
내가 귀신이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럴리가 없잖아
거짓말이야
다
다
거짓말이야
난 죽지 않았어
난 죽은 적이 없어
난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어
"젠장...폭주하길 시작했군. 지금은 때가 아닌데.. 젠장 젠장 젠장"
하늘은 점점 더 붉어지고 해는 모습을 감췄다. 갑작스러운 큰 소음에 사람들은 학교를 뛰쳐나와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아직 반을 나가지 못한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이미 악귀로 변해버린 비명이 하늘을 가득채운다.
사실 각별은 공룡을 얼마든지 퇴마시킬 수 있었다.
그동안의 얇팍한 정 때문에, 그놈의 정 때문에 자신이 졸업하기 전까지만 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그동안 퇴마를 미루고 미뤘었다. 각별도 그동안 공룡 덕분에 하루 하루가 즐거웠다. 비록 인간과 귀신의 우정이였지만, 각별은 처음으로 진정한 친구를 만난 거 같아 너무나도 기뻤다. 각별의 주위에는 그의 퇴마 능력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욕망이 사로잡힌 친구들만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선 자신의 집과 걸어서 1시간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고등학교로 도망치듯이 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알아본 동급생들 때문에 각별은 또 다시 유명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공룡만큼은 달랐다. 그를 진정한 친구로 봐주고 그의 능력 대신 유일하게 각별의 모습만을 봐주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겠지"
각별은 악귀 공룡을 향해 슬픈 미소를 머금고서는 가장 강력하고 자신이 가장 아꼈던 부적을 꺼내 들고선 그에게 달려갔다.